어떤 음악은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이유로 스스로 부끄러워하다 사라진다. 우리나라에선 뽕짝이 그러하다. 한때 우리나라의 가장 대중적인 정서였던 음악이, 어느 순간부터 "촌스럽다"는 말에 고개를 숙인다. 냄새나는 노인들의 음악. 그 낙인은 이미 꽤 오래되었고,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그 음악이 품고 있는 정서를 제대로 마주하기도 전에 외면하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될 지경이다. 250의 첫 번째 정규앨범 《뽕》은 그 고개를 다시 들어 올리는 작업이다.

250은 이 앨범을 위해 뽕짝을 7년간 쫓았다. 유행처럼 잠깐 차용한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의 계보와 어법을 직접 몸으로 익힌 시간이다. 그 결과물은 단순한 샘플링이나 레트로 코스프레가 아니다. 이박사, 오승원 같은 원로 뮤지션들과 손을 잡고, 뽕짝이 품고 있던 정서를 전자음악의 언어로 성공적으로 번역해냈다. 덕분에 앨범은 진정성을 얻었고, 젊은 세대에게 그 뮤지션들을 (대부분의 경우)처음으로 소개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앨범이 발매된 2022년은 묘하게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시기였다. 미스트롯·미스터트롯 열풍이 트로트를 다시 대중 앞에 꺼내놓았지만, 동시에 오디션 포맷 특유의 과잉 감정 연출과 반복되는 편곡 공식이 젊은 세대에게 피로감을 안겨준 시점이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열풍은 트로트를 소비재로 소모하면서 오히려 원형의 어법을 더 빠르게 지워버리는 역할을 했다. 250의 《뽕》은 그 피로감이 쌓인 자리에, TV도 기획사도 아닌 다소 매니악한 일렉트로닉 씬에서 접근했다. BANA의 소속으로 이미 이센스 등과 작업한 이력이 있는 250은 그 출처 자체로 이미 다른 신뢰감을 줄 수 있었다.
이것이 이 앨범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세대에게 "이게 사실 좋은 음악이야"라고 설교하지 않는다. 자신이 새로이 해석한 이 장르를 그저 들려줄 뿐이다. 그리고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이 음악에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인상이 얼마나 학습된 것이었는지 스스로 느끼게 된다. 뽕짝의 정서는 사실 지금 세대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걸 250은 구차한 설명없이도 느끼게 만들었다.

250이 이 모든 것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7년 전, 트로트 열풍이 올 것도, 그 피로감이 쌓일 것도, K-pop의 글로벌 열풍 속에서 "한국적인 것"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것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좋아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파고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들이 쌓이는 동안 시대가 마침 맞아떨어졌다. 운이라면 운이지만, 오래 버틴 사람에게 찾아온 운이다. 준비가 없었다면 아무리 타이밍이 좋아도 꺼낼 것이 없었을 테니까.
물론 한계도 있다. 이 앨범의 영향력은 주로 음악 씬과 비평 영역에 집중됐다. 뽕짝의 원래 타겟, 즉 중장년 대중에게까지 닿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어떤 리스너가 본인의 할머니에게 들려주었더니 '이건 뽕이 아니다'라는 답을 들었다는 우스운 일화도 있다). 재해석의 수혜자가 결국 젊은 인디 청중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뽕짝을 완전히 부활시켰다기보다는 사장되어 가던 음악의 정서를 현대적인 형태로 기록해두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댓글
0